친환경 깁스 병원복 나와있는데 왜 안 쓸까?
친환경 깁스 병원복 나와있는데 왜 안 쓸까?
환경오염을 최소화하고(E),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S),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유지(G)해야 한다는 ‘ESG’가 대세다.
같은 물건이라도 ‘친환경’이란 말이 붙으면 괜히 눈길이 한 번 더 간다.
생활용품이나 비닐 등 소모품만 친환경 제품으로 대체되는 게 아니다.
의료 물품 역시 친환경 바람이 거세다. 생산 기술과 제조 능력을 갖춘 업체가 국내에 이미 있지만,
판매에 고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유가 뭘까?
국내 업체들, 친환경 깁스·병원복 제작 능력 갖춰
친환경 플라스틱 업체 도원바이오테크는 PLA(Poly lactic acid) 소재로 저온성형 깁스,
임시치아, 틀니, 교정용 임시보철물 등을 제조한다.
PLA는 옥수수 등 식물 전분을 원료로 만든 플라스틱이다.
미생물들이 먹이로 인식해 자연 속에서 분해된다. 소각해도 이산화탄소, 카드뮴,
다이옥신 등의 물질이 발생하지 않아 환경 오염을 최소화할 수 있다.
특히 주력 상품인 깁스와 스플린트는 아이와 노약자에게 알레르기를 유발하기 쉬운 일반 깁스를 대체하려 개발됐으며,
잠재적 위해성이 거의 없는 ‘1등급 의료기기’로 허가받았다.
가위로 잘라서 온수에 담근 후, 깁스하고 싶은 곳에 가져다대고 20초 내로 모양을 잡으면 형태가 고정된다.
영유아의 발가락, 손가락처럼 일반적인 깁스를 하기 어려운 부분에도 적용할 수 있다.
친환경 의류제작업체 대지를위한바느질에선 ‘헤드플러스(HED+)’라는 친환경 병원복 브랜드를 운영한다.
전 세계에서 쓰는 농약 중 10%, 살충제 중 25%가 목화 재배에 쓰인다고 알려졌다.
이에 헤드플러스는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유기농 면만으로 환자복을 만든다.
초창기엔 쐐기풀로 만든 수입 원사를 사용했다.
그러나 원사 수요가 많지 않아 원사 제작업체가 부도나면서, 유기농 면으로 재료를 바꿨다.
의사 가운과 간호사복엔 리사이클 폴리에스테르를 사용한다.
의료진 의복은 통상 폴리에스테르 100%나 폴리에스테르 60%, 면 40%로 구성된다.
이때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리사이클 폴리에스테르로 일반 폴리에스테르를 대체하면,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량을 30% 정도 줄일 수 있다.
병원이 친환경 행보를 보이고 싶다면, 사용하는 물품부터 친환경적인 것으로 바꿔야 한다.
인하대 정책대학원 노인학과 남상요 교수(세종병원 의료정책연구소장)는
“병원들이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는 제조업체의 물품을 구매하거나,
병원이 가진 환경 경영 노하우를 기존 협력업체에 제공해야 친환경이 업계 통용 윤리로 자리 잡을 것”이라 말했다.
있어도 못 파는 이유? “소량 생산해 단가 비싸고, 수가 없는 탓”
이미 친환경 의료물품이 개발돼있지만, 이를 도입해 사용하는 대형병원은 많지 않다.
친환경 물품은 일반 물품보다 비싼 경향이 있다. 무엇이든 대량 생산을 하면 개별 단가가 낮아진다.
그러나 친환경 제품은 아직 수요가 적어 이것이 불가능하다.
헤드플러스 이경재 대표가 2008년에 처음으로 제작한 친환경 병원복은 일반 병원복보다 1.5배 정도 비쌌다.
이경재 대표는 “우선, 친환경 원사 자체가 일반 면보다 30~40% 정도 비싸다”며
“또 사용하는 원단의 총량이 5000야드(약 2500벌) 정도 돼야 원단 기계 하나를 전용으로 임대할 수 있는데,
당시엔 200벌 정도만 제작 요청이 들어와 대량 생산 때보다 기계 사용비가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친환경 물품을 구매해야 한다는 건 병원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병원 경영비를 감축해야 하는 실무자로선 가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남상요 교수는 “병원에서 친환경 종이컵과 다회용 쟁반을 구매하려고 했지만,
가격이 더 비싸서 결국 구매를 포기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친환경 물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 덴 ‘수가’도 한몫한다.
도원바이오테크 함지연 대표는 “의료기기 제작에 친환경 신소재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없다 보니,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의료 수가 심사 평가를 신청했음에도 1년 이상 계류 중이다”며
“수가를 적용받지 못하는 제품을 병원에 유통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라고 말했다.
‘큰 손님’ 있으면 가격 확 낮아진다… 직거래·공동구매가 답
대형 고객이 없어 대량 생산이 어려우니 단가가 올라가고,
이에 대형 고객을 유치하기 어려운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정면돌파밖에 없다.
대형 고객이 일단 한 번 생기기만 하면 단가가 낮아진다. 도원바이오테크 함 대표는
“병원들이 중간상을 거치지 않고 대량 구매를 해준다면, 일반 플라스틱 제품과 가격 차가 얼마 나지 않게 단가를 맞출 수 있다”며
“정부에서 소각성 의료제품만이라도 생분해성 제품을 구매하도록 규제를 만들어준다면 병원에
친환경 제품을 유통하기가 훨씬 쉬울 것”으로 기대했다.
헤드플러스 이 대표 역시 “대형병원 정도 물량이 확보되면 원단 기계 하나를 전용으로 임대해서 쓸 수 있어
생산가가 낮아지고, 소형 병원에도 단가를 낮춰서 납품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병원이 의료물품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제조업체에 직접 구매요청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직거래를 하면 제조업체가 도매상에게 줘야 할 수수료가 사라진다. 그만큼 물품 단가를 줄일 수 있다.
헤드플러스는 이미 몇몇 중소병원과 직거래를 하는 중이다.
공식몰에 직거래를 위한 페이지를 따로 마련했으며, 성북구보건소를 비롯해 친환경 의복을 납품 중인 의료기관의 이름도 일부 공개돼 있다.
대량 구매를 통해 단가를 더 낮추고 싶은 중소병원들은 공동 구매를 택할 수 있다.
수십 년간 병원 물류·운영관리 전문가로 활동해온 지영호 물류학 박사는 “중소병원들이 병원경영지원회사(MSO)를
공동 설립하거나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친환경 물품을 공동구매하고,
병원과 가까운 곳에 공급망 거점을 만들어 각 병원에 물품을 조달하는 방식을 제안한다”며
“이렇게 하면 각 중소병원이 독자적으로 물건을 구매할 때보다 가격도 낮아지고,
MSO 운영을 통해 병원도 이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