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던 세상과 단절하는 것 단약에 그나마 가까워지는 길
내가 알던 세상과 단절하는 것 단약에 그나마 가까워지는 길
마약 관련 사건은 자극적인 키워드로 점철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 마약에 중독되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의 매우 평범한 사람들이다.
스스로 마약을 구해 시작하는 이들도 있지만 소수다.
대부분은 친구나 연인, 직장 동료가 무심코 건넨 약물로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약에 빠진 사람들 중 절반은 평생 벗어 나오지 못하는 반면 나머지 절반 가량은 약을 끊으려고 발버둥 친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만난 김민준(가명)씨는 단약 3년차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본드·가스로 시작, 3년 만에 필로폰까지
올해 49세인 김민준씨는 14세 때 처음 마약을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마약에 중독됐던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시작은 본드와 가스였다.
그러다 ‘러미날’로 넘어갔다. 김씨는 “인천에서 체육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운동을 하니까 몸이 부서질 것처럼 힘든 날이 많았다”며
“러미날을 쓰니 통증이 잘 조절돼, 한 달에 이틀 정도는 운동도 하지 않고 쉬는 날을 만들어 온종일 약물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17세 때 ‘염산날부핀’이라는 환각제를 접했다.
1회용 주사기로 정맥을 통해 주입한 첫 약물이었다.
어느 날 선배가 “정말 센 것”이라며 가져온 약물을 대수롭지 않게 주사기에 넣고 몸에 주입했다. 필로폰이었다.
그렇게 돌아오기 힘든 강을 건넜다. 김씨의 머리에는 ‘참 쉽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는 “주사기를 사용한 경험이 있으니 어떤 약물이든 무섭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며 “이걸로 삶이 망가질 수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쯤 외환 위기(IMF)가 찾아왔다.
운동에 이렇다 할 재능이 없었던 그는 도피하듯 입대를 선택했다. 군대에서는 당연히 마약을 할 수 없었다.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딸이 생긴 것도 그 시기였다. 처가에서 반대가 심했지만 딸을 낳았다.
남은 군 생활을 마저 하다가 전역했다.
그는 전역과 동시에 가족들에게 “생계를 책임지겠다”고 말하고 남대문으로 향했다. 마약을 팔기 위해서였다.
마약이 어떤 식으로 유통되는지 대충 알고 있어서였다.
김민준씨는 “그때는 ‘어디 가서 취직을 하겠어’라는 마음이 컸다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돌이켜보니, 약물과 가까워지고자 나 좋자고 갔던 거다”라고 말했다.
남대문에서 마약을 팔던 그는 사법기관에 적발돼 처음으로 법적 처벌을 받게 된다.
러미날이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된 2003년경의 일이다. 그로 인해 교도소에서 4년 가까이 징역을 살았다.
그는 교도소 안에서 ‘앞으로 약물 판매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다만 약물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스스로 ‘약물 중독’이라는 사실, 3년 전에야 깨달아
출소 후엔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아보려 노력했다. 자동차 부품을 만들던 공장에 취직도 했다.
그런데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다시 마약이 생각났다고 한다.
김씨는 “문제를 회피하고 스스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을 알고 있다 보니, 아무런 고민 없이 자연스럽게 또 마약을 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그 이후부터 그는 ‘마약을 구하기 위해’ 살았다.
용접공, 병원 보호사 등으로 잠깐씩 일하면서 벌어놓은 돈 대부분을 약을 구매하거나 판매상에게 잘 보이기 위한 선물을 사는 데 사용했다.